박대온: 제2의 인생을 시작한 KBO 포수 이야기
- 서막: 박대온, 그리고 새로운 시작
- NC 다이노스 시절: 가능성을 보여준 루키
- NC 다이노스 포수로서의 역할과 성장
- 등번호 27번 선수의 타격과 수비 스타일 분석
- SSG 랜더스 시절과 갑작스러운 은퇴
- 박대온이 남긴 기록과 미래를 향한 발걸음
- 결론: 선수 박대온을 기억하며
서막: 박대온, 그리고 새로운 시작
박대온은 1995년 8월 28일 서울에서 태어나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2014년 KBO 신인 드래프트 2차 2라운드 전체 25순위로 NC 다이노스에 지명받으며 프로야구 선수로서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데뷔 초기 ‘박광열’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지만, 이후 ‘박대온’으로 개명하며 팬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알렸죠. NC 다이노스 포수로서 그의 커리어는 많은 팬들의 기대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프로 생활은 2025년 5월, 갑작스러운 은퇴 선언과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박대온의 프로 데뷔부터 은퇴까지의 여정을 되짚어보고, 그가 KBO 리그에 남긴 발자취와 앞으로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사실 박대온 선수의 은퇴 소식은 많은 팬들에게 놀라움과 아쉬움을 안겼습니다. 저 역시 그의 플레이를 지켜보며 성장 가능성을 기대했던 팬 중 한 명으로서, 갑작스러운 결정이 믿기지 않았죠. 하지만 “제2의 인생을 위해 야구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그의 의사를 존중하며, 그의 지난 선수 생활을 되돌아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걸어온 길을 따라가며, 우리는 한 야구 선수의 땀과 노력을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NC 다이노스 시절: 가능성을 보여준 루키
박대온은 2014년 NC 다이노스에 입단하여 1억 원의 계약금을 받으며 유망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2015년 3월 29일, 잠실 두산 베어스 전에서 김태군의 대수비로 출전하며 1군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그해 33경기에 출전하며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특히 5월 24일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 전에서는 손승락을 상대로 데뷔 첫 2루타와 결승 타점을 기록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휘둘렀다는 그의 말처럼, 때로는 신인의 패기가 놀라운 결과를 만들기도 하죠.
이후 몇 년간 박대온은 꾸준히 1군 경험을 쌓았습니다. 2016년에는 13경기 출전에 그쳤지만 4할이라는 높은 타율을 기록했고, 2017년에는 60경기에 출전하며 출전 기회를 늘려갔습니다. 비록 타율은 0.190으로 아쉬웠지만, 7개의 2루타와 1개의 3루타, 그리고 데뷔 첫 홈런을 기록하며 장타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 NC 다이노스는 김태군이라는 확실한 주전 포수가 있었기에 박대온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았지만, 백업 포수로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성장해 나갔습니다. (KBO 공식 웹사이트에서 더 자세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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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다이노스 포수로서의 역할과 성장
NC 다이노스 포수로서 박대온의 역할은 단순히 백업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김태군, 용덕한, 양의지, 박세혁, 김형준 등 KBO를 대표하는 쟁쟁한 포수들과 함께 경쟁하며 그는 끊임없이 발전해야 했습니다. 특히 양의지 선수가 FA로 이적하고, 김형준 선수가 군 복무와 부상으로 자리를 비웠을 때, 박대온은 박세혁, 안중열 등과 함께 안방을 지켜야 하는 중책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는 투수 리드와 볼 배합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고, 블로킹과 2루 송구 능력도 준수하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물론, 때로는 경험 부족으로 인한 아쉬운 플레이가 나오기도 했지만 (예: 2023년 6월 24일 한화전 송구 실책 ), 그는 꾸준히 경기에 출전하며 경험을 쌓았습니다. 2022년에는 59경기에 출전해 127타수를 소화하며 개인 한 시즌 최다 타수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주전 자리를 확고히 꿰차지는 못했지만, 팀이 필요할 때 언제든 제 몫을 해줄 수 있는 든든한 백업 포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NC 다이노스 시절, 그는 여러 등번호를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44번을 달았고, 이후 12번, 20번, 57번, 99번을 거쳐 2021년 복귀 후에는 26번을 달았습니다. 팬들에게는 아마 26번 혹은 99번 시절의 모습이 가장 익숙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등번호 변경은 선수의 상황 변화나 새로운 각오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기도 하죠.
등번호 27번 선수의 타격과 수비 스타일 분석
박대온은 우투우타의 포수로, 182cm, 85kg의 준수한 신체조건을 가졌습니다. 그의 통산 타율은 0.212로 타격에서 두각을 나타낸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 한 방을 터뜨려주거나, 끈질긴 승부로 팀에 기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통산 2개의 홈런과 16개의 2루타, 1개의 3루타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2017년과 2022년에 각각 홈런을 기록하며 파워 툴이 완전히 없는 선수는 아님을 증명했습니다.
수비적인 측면에서는 KBO 포수 박대온으로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습니다. 포수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인 투수와의 호흡, 그리고 경기 운영 능력을 키우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의 강점 중 하나는 주자 견제와 도루 저지 능력이었습니다. NC 시절 많은 경기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출전했을 때는 투수들을 안정적으로 리드하며 수비 부담을 덜어주려 애썼습니다. 통산 11개의 실책을 기록했는데, 포수라는 포지션의 특성을 감안하면 준수한 기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쟁쟁한 선배 및 후배 포수들과의 경쟁 속에서 확실한 주전으로 발돋움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NC 다이노스는 전통적으로 포수 자원이 풍부한 팀이었고, 이는 박대온에게 성장의 자극제가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넘어야 할 높은 벽이기도 했습니다. (NC 다이노스 포수진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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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G 랜더스 시절과 갑작스러운 은퇴
2023년 시즌 종료 후, 박대온은 KBO 2차 드래프트를 통해 SSG 랜더스로 이적하게 됩니다. 10년간 몸담았던 NC 다이노스를 떠나 새로운 팀에서 기회를 모색하게 된 것입니다. SSG는 당시 포수 뎁스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고, 베테랑 이재원의 이적과 김민식의 FA 협상 난항으로 인해 박대온에게 기회가 올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습니다. 그 역시 “SSG의 승리에 도움이 되고 싶다”, “김광현 선배님의 공을 받아보고 싶다”며 새로운 팀에서의 활약을 다짐했습니다. SSG에서는 박경완 코치의 영구결번인 26번 대신 12번 등번호를 배정받았습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박대온은 SSG 유니폼을 입고 1군 무대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2025시즌 퓨처스리그 경기에도 출전하지 않았다는 기록은 그가 팀 내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었음을 시사합니다. 그리고 2025년 5월 1일, 그는 갑작스럽게 현역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SSG 구단은 “박대온이 제2의 인생을 위해 야구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면담 끝에 선수의 뜻을 존중해 임의해지 공시를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은퇴 사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는 구단을 통해 “실력에 비해 과분한 사랑과 응원을 보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선수로서의 생활은 내게 값진 기억으로 남았다. 앞으로도 맡은 자리에서 책임과 최선을 다하겠다”는 인사를 전했습니다. 또한, 야구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출국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의 야구에 대한 열정은 끝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박대온이 남긴 기록과 미래를 향한 발걸음
등번호 27번 선수는 아니었지만, 박대온은 KBO 리그 통산 259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12, 77안타, 2홈런, 23타점, 28득점을 기록했습니다. 화려한 기록은 아닐지라도, 10년 가까운 프로 생활 동안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선수의 노력이 담긴 숫자입니다. 그는 NC 다이노스의 백업 포수로서 팀의 필요에 따라 역할을 수행했고, 잠깐이나마 SSG 랜더스 선수단의 일원이었습니다.
비록 2차 드래프트 신화는 쓰지 못하고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지만, 그의 야구 인생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서의 야구 공부는 그가 지도자나 프런트 등 야구계의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할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선수 시절 쌓은 경험과 지식은 분명 그의 새로운 도전에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그의 통산 기록은 스탯티즈와 같은 기록 사이트에서 더 자세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결론: 선수 박대온을 기억하며
박대온은 비록 KBO 리그에서 스타 플레이어로 빛나지는 못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10년간 프로 선수로서 겪었을 치열한 경쟁과 끊임없는 노력의 시간들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NC 다이노스 팬들에게는 든든한 백업 포수로, SSG 랜더스 팬들에게는 짧지만 기대감을 안겨주었던 선수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의 갑작스러운 은퇴는 아쉽지만, 야구 공부를 위해 새로운 도전을 선택한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제 그라운드를 떠나 새로운 길을 걷게 될 박대온. 그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다시 야구팬들 앞에 서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선수 시절 보여주었던 성실함과 긍정적인 에너지로 제2의 인생에서도 성공적인 길을 걸어가기를 응원합니다. 선수 박대온의 시간은 멈췄지만, 그의 야구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을 것입니다.